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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듣고 보았나/책/사진

[사진 읽어주는 여자?] 프란체스카 우드만

으으 얼마전 케이블티비의 일명 사진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우드만 언니의 사진을 놓고 누드사진이라고 하는것에 충격받았다. 도대체 무슨생각인지? 작가의 작품 의도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도 안 하는 것인가?

사진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작가가 왜 이 피사체를 선택해서 찍었는지, 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찍었는지? 그 의도와 배경을 알아내는 게 그 사진을 읽는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작가를 이해해야 사진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Francesca Woodman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먼저 접근해야할 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패미니즘이다. 이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녀의 사진들 뿐만이 아닌, 몇몇 현대사진들은 그냥 플레이보이, 또는 포르노잡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진들과 동급으로 치부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니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이 말하자면 요즘 세상의 흐름이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 흐름이 아직 우리에게 제대로 흘러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사동이라든가 청담동의 전시장 같은 곳에서는 익히 볼 수 있을 만치,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손쉽게 느낄 수 있는 흐름이기도 하다. 지난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 흐름은 이제 한 세대쯤 세월이 경과하면서 다소 진부해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주류라고 생각되고 있는게 사실... 그러한 흐름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확연히 느껴질 수 있기에 현대사진을 이해하는 데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핵심이 되고 있다. 그래서 현대사진을 공부한다거나 현대미술을 공부할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된다.

on being an angel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철학적 배경을 살펴보면 정신을 중요시하고 육체를 무시한 데까르트의 심신이원론, 더 나아가 이성우위론으로 대표되는 근세 이후의 철학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예가 '몸'의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발점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메를로퐁티의 “나는 나의 몸이다”라는 발언이다. 이것은 몸이 바로 진정한 인간 자체라는, 이를테면 인간의 몸은 인간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아니라 몸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이고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몸'이 이제는 마음에 예속되지 않고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몸의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내용이 "억압된 것들의 복귀", "주변적인 것들의 부상"이라고 말할 때, 억압된, 주변적인 것들의 대표가 '몸'으로 이해되고 있고, 더 나아가 '성'으로까지 확대 되어 졌습니다. 몇몇 작가들은 단순한 신체뿐만이 아닌,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소변이나 땀, 심지어는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생리혈 까지도 작업을 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다./경악/


이런 몸 사진은 누드사진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한 미술 평론가가 말하길 누드는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여성의 재구성된 육체의 이미지로, 무방비한 신체인 알몸과는 구분된다고 했다.(그 평론가가 케네스 클락이던가?) 한 마디로 누드는 가식이지만 알몸은 솔직한 것이라고나 할까?-_-;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가들은 누드가 아닌 알몸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타자였듯이, 이성중심주의에서 몸 또한 타자였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미술에서 몸의 담론이 물꼬를 트게 되면서 성이라든가 비참함 등등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현대의 페미니즘도 초기에는 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여성의 저항이라는 형식으로 표출되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 시대의 주된 사조로 자리잡게 되면서는, 여성 작가들이 '몸'의 담론에 입각한 구체적인 작품, 특히 사진 작품으로 적극적인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 속으로 녹아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중에 여성 작가가 많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드만은 그러한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아니, 단순한 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흐름을 처음으로 이끌었던 선구자였다. 우드만은 자신의 몸을 통해 여성해방운동과 성의 정치학이라는 그 당시 핵심적인 페미니즘 미학을 실행에 옮겨 작품으로 표현했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 격인 on being an angel은 모든 억압을 뚫고 자신이 천사가 되어서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인데, 딱 보면 알 수 있듯 부감촬영으로 날아가는 효과를 준 것이다. 물론 사진 속의 인물도 우드만 자신을 찍은 셀프포트레이트다. 아래의 사진도 세상의 터부를 깨는 듯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그녀 자신의 을 나타내고 있고... 하지만 모든 것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기엔 부족했던 것일까? 죽음이 진정한 해방이었다고 생각한 걸까? 결국 Woodman은 22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드만의 사진을 이해하려면 이런 배경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사진 한 장의 의미는 단 한 줄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아니,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렇게 긴 사연이 그 배경 속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배경들을 안다면, 사진을 읽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도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요즘의 흔한 단순한 찍사들이 뭘 알리요...

Francesca Wood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