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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듣고 보았나/책/사진

거울 속으로...

요즘은 며칠 째 상당히 마음이 공허하고 심란한 상태이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귀국 후에 나타나는 이 엄청난 허탈감....뭐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크고 강하고 아프게 다가올지 몰랐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 땐 심각한 우울증에 염세,염인증이 도져서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으며 가만히 누워서 저주받았다면서 괴로워하며 세월을 보내는 게 일이었고...(니체도 아닌 주제에....), 20대 중반엔 그런 불치병들을 계속 안고 살려니 불만만 가득 차서 무지하게 냉소적인 인간으로 돌변해 항상 투덜이 스머프 같았고, 20대 후반부터 작년까지는 이상한 섬나라로 도피를 해버려 커다란 구멍만 만들어서 가져왔다. 공부를 위한 공부보다는 하기싫은 일들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공부를 하며 내 안에 갖혀서 살았는데, 그 결과가 요즘의 허탈함이구나.. 직장이라고 다니는 곳은 주변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인데다 평소 내가 알아왔던 환경이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직장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마음이 심란할 때 음악도 들어보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해보지만,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 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지내던 중,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거울파 사진들을 보고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지? 난 평소에 거울파 사진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Szarkowski는 현대 사진가들을 "거울과 창"이라는 이름으로 구분을 지었었다. 거울파는 자신의 내면적인 풍경을 찍는 사진가들이고, 창파는 사회적인 풍경을 찍는 사진가들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안을 들여다보는 거울과, 밖을 내다보는 창을 빗댄 말이다. 보도사진 전공자인 나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메세지가 담긴 사진을 좋아해서 작가의 내면까지도 읽어내야 하는 거울파 사진들에 대해선 그닥 흥미가 없었다.(그렇다고 창파의 사진에 작가의 내면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거울파 사진가 중에서도 특히 Caponigro의 사진이 가장 눈에 띄었다. 자연풍경과 정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한 완벽에 가까운 사진이란 느낌! 당장은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에 그의 사진을 보는 것이 제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겠지만, 언제까지 저의 공허한 마음이 계속 될지 기약할 수 없으니,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그때는 보는 것만으로는 무엇인가가 부족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부터 Caponigro의 흉내라도 내야 하는건지...;; 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 내 내면을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수 있을까?